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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가창신공] 최준원 ‘한예진’ 실용음악학과장

2023.10.06 (조회수 538)

-정동원?송가인?장민호?박현빈 등 많은 가수 작업한

-작곡?편곡자 겸 세션맨, ‘디프라인’ 스튜디오 대표

-9월부터 실용음악 계열 학과장 업무 시작

-“졸업 후 즉시 필드 진출”하는 곳으로 만들고파

-10대 때부터 행사용 메들리 음악의 제왕으로 통해

-수천여개 넘는 악기?장비 소장한 오타쿠

-록/메틀을 트로트 편곡에 응용하기도

-“박서진 ‘밀어 밀어’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곡”

-“박서진, 나상도, 박지현은 트로트씬의 새로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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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작곡?편곡가 최준원(29)이 지난 9월(2학기)부터 한국방송예술진흥원(한예진) 실용음악 계열 학과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1992년 출범한 ‘한예진(이사장 김학인)’은 서울 이화여대 역 인근에 있는 도심형 캠퍼스로, 교육부에서 인정한 4년제 방송예술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다.


박서진, 정동원, 송가인, 장민호, 정동원, 박현빈 등 많은 가수 작곡과 편곡 작업을 한 최준원 학과장은 현재 만 29세로, 실용음악과가 개설된 국내의 정규 대학 및 학점은행제 기관을 통틀어 최연소 학과장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번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 코너에선 ‘한예진’ 사옥내 실용음악학과장 실에서 최준원 작곡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준원 ‘한예진’ 실용음악학과장은 MBC ‘쇼 음악중심’, MBC에브리원 ‘쇼 챔피언’, KBS1 ‘아침마당’ ‘열린 음악회’ ‘전국노래자랑’, KBS2 ‘뮤직뱅크’ 등의 방송용 음악 기타 세션 및 편곡자로도 참여했고 임영웅의 ‘계단말고 엘리베이터’ 편곡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저작권협회엔 213곡, 실연자협회엔 3000여 곡이 등록돼 있다.


“졸업 후 곧바로 필드로 진출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이 한마디에 그가 추구하는 ‘한예진’의 실용음악 계열 방향성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생들을 ‘불후의명곡’ 코러스로 내보내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나타내는 중이다.


강의에도 적극적이다. 최준원 학과장은 아침 일찍 일산 집에서 나와 오전 8시에 한예진으로 출근한다. 일주일 평균 6개 과목(18학점)을 강의할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늦게까지 학교에서 업무를 보기 때문에 그간 해오던 음악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고자 학과장실에 각종 장비를 갖다 놓았다. 강의가 없을 땐 여러 기획사에서 의뢰한 곡 작업을 하다가 강의실로 들어가는 식이다.


“단기적으론, 졸업 후 곧바로 필드로 진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지만 장기적 비전은 시사, 토크쇼 등과 같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최적화된 곳으로 우뚝 서는데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방송예술진흥원(한예진)’은 여느 방송국 부럽지 않은 고가의 방송 장비도 비치돼 있어요. ‘한예진’에서 보유하고 카메라 장비만 몇천 종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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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원은 1994년 7월 3일 서울 은평구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하던 사업 때문에 2001년 포천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서울로 왔다.


어릴 때부터 트로트 작곡가들의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성인가요 전반과 악기를 취미로 하게 됐다. 5살 때부터 기타를 시작했고 다른 악기도 빠르게 습득해 갔다. 트로트 작곡가들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똘똘하고 음악적으로 남다르다고 여겼던 것. 기타를 처음 배울 때부터 그는 오리지널 마틴 기타(어쿠스틱)와 빈티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일렉트릭)로 연습할 정도였다. 이런 귀한 악기를 갖고 있던 작곡가 아저씨들이 어린 최준원이 귀여워 연습용으로 만질 수 있게 특별 배려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노래 만들고 부르며 연주할 줄 알았기 때문에 주변에선 저를 ‘트로트 신동’이라 불렀어요. ‘트로트 신동’은 서라벌레코드 김재구 사장이 붙여준 것이죠. 저는 서라벌레코드 마지막 전속 가수 출신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만 잘했던 게 아니라 학교 공부도 돋보였다. 고3 때 ‘멘사’에 가입할 수 있을 만큼 IQ도 높게 나왔다. 2013년 수능에서 올 1등급을 받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최준원은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껴 대입을 포기하고 음악의 길로 더욱 깊숙이 뛰어들었다.


이미 10대 시절 최준원은 행사용 메들리 음악의 제왕으로 통했다. 한마디로 고속도로 메들리 음악의 80%는 그가 다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의 모든 일거리가 그에게 쏠릴 정도였다. 나이는 10대지만 이즈음 그는 그 어떤 기성 음악가들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번 돈 중 일부는 악기?장비를 사는 데 많이 썼다. 2014년 신촌에 ‘디프라인’이란 스튜디오를 오픈했고, ‘디프라인’을 100평 규모로 늘려 일산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다. 이 스튜디오 만드는데 50억이 들었다. 규모에 맞게 고가의 장비와 다양한 아이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최준원 작곡가는 각종 음악장비 오타쿠이기도 하다. 틈만 나면 새로운 걸 사 모으고 있으며 현재 집엔 800여 개, 녹음실엔 약 4000개 이상 각종 장비가 비치돼 있다. 일렉기타와 어쿠스틱기타, 드럼, 건반, 트럼펫, 트롬본, 피리, 카우벨 등등 1200개가 넘는 악기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10대때부터 음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스타 가수와 작업한 그는 현재에도 가장 바쁜 성인가요 작곡 편곡가 중 하나다. 또한, 곡을 빨리 쓰는 타입으로, 하루에 3~4곡 이상 어렵지 않게 쓸 때도 있다.


지금까지 많은 곡 작업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박서진의 ‘밀어밀어’를 꼽았다. 박서진 ‘밀어밀어’는 최준원이 가장 아끼는 곡이기도 하지만 무려 1000여번 이상 수정한 곡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특별한 곡이다.


“서진이한테만큼은 정말 잘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박서진과 워낙 친하고 그를 잘 알다 보니 가장 빨리 썼던 곡도 ‘밀어 밀어’고 아쉬워서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많이 손을 댔던 것 같아요.”


최준원 작곡가 겸 ‘한예진’ 실용음악학과장은 4~5년간 박서진 보컬트레이닝을 맡기도 했다.


“박서진의 장점은 노래할 때의 기분?감정의 전달력이 탁월하다는 겁니다. 노래할 때 좀 슬픈 기분이라면 그걸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초반 몇 음을 노래할 때부터 그러한 느낌을 듣는이에게 그대로 전달합니다. 이러한 면은 박서진만의 뛰어난 특장점 중 하나라고 봅니다.”


“박서진, 나상도, 박지현 등은 트로트씬의 새로운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최준원 하면 트로트 작곡 편곡가란 인식이 굳어져 있다. 그만큼 그가 작업한 것 중 상당수 히트한게 트로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트로트뿐만 아니라 록, 포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해왔다.


“사실 그간 작업한 것 중에서 트로트 비중은 40%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게 트로트 장르라서 그렇게 인식이 돼버린 것 같아요. 2022년 iHQ 예능 ‘맛있는 녀석들’ 음악감독도 했었는데 그때 음악도 트로트와는 전혀 다른 장르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최준원은 작곡가이자 편곡자로서 록/메틀을 즐겨 듣고 이러한 스타일을 트로트에 응용하기도 한다. 그는 특히 뮤즈, 슬립낫을 좋아한다. 이외에 오아시스, 원어클락, 제이슨 므라즈 등 즐겨 듣는 아티스트가 꽤 많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트로트를 방송용 버전으로 편곡할 때 뮤즈 ‘히스테리아’ 스타일을 응용한 코드웍도 시도했다. 이외에 김중현 ‘비켜라’ 등 몇몇 곡에서 이러한 자신의 취향을 이식하고 있다. 강석 ‘여자 사람’이나 정동원 ‘누가 울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트로트에 슬립낫 스타일을 채용하기도 한다. 종종 ‘불후의명곡’에선 방송용 편곡으로 클럽 음악을 트로트에 접목하기도 했다.


최준원은 정동원 새 앨범을 작업했다.


“신작에서 정동원의 새로운 트로트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린 동원이가 아닌 성숙된 가수 정동원만의 진모를. 정동원은 도화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많은 게 열려있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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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원 작곡가는 먹는 걸 인생의 행복으로 여길만큼 좋아한다. 한때 식탐을 참지 못해 58kg 체중이 2015년엔 103kg까지 나갔다. 당시 하루에 6끼 이상을 먹었다고 한다. 부대찌개 3인분에 족발(특대)과 보쌈(특대), 막국수까지 혼자 남김없이 먹어 치웠던 것. 물론 지금은 68kg으로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부대찌개. 어머니가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함께 먹으며 부대찌개에 ‘환장하게’ 된 것이라고.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동두천의 ‘신진부대찌개’나 의정부 ‘진미식당’에 가서 부대찌개를 원 없이 먹고 옵니다. 부대찌개를 먹기 위해 평택까지 갈 때도 있어요. 서울에선 부대찌개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죠. 그나마 여의도의 ‘희정식당’이란 곳이 맛있는 정도랄까요? 부대찌개 외에 보쌈, 치킨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는 먹는 데 집중하기 위해 혼자 가는 걸 좋아한다고.


식탐과 금연은 일정 시간(몇 년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이 흐를 때까지 계속 참는 행위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최준원은 초코우유를 마시고 다시 냉장고에서 초코우유를 가져와서 또 마시고 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지만 담배는 하루 3갑 이상의 ‘골초’다. 취미는 스쿠버다이빙과 드라이빙. 여기에서 ‘드라이빙’이란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운전 자체를 즐긴다는 뜻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최준원 학과장 겸 작곡가가 꿈꾸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수입의 일정 부분은 항상 어려운 이웃과 같이 할 수 있는 걸 모색하려고 한다.


“코로나로 그간 못했지만, 올해가 지나기 전 보육원에서 빨래하고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출처 : 스포츠한국(https://sports.hankooki.com/)

https://sports.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6841491